1911년 만주에서 조직된 친일단체. 용정촌에서 최초로 조직된 이래 만주 전역에 걸쳐 조직. 조선총독부가 만주 지방의 민족해방운동을 탄압하는 보조기관으로 또한 민족해방운동가들과 조선인들을 유리시킬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모두 18개 지역에 민회가 조직되었으며, 가입된 조선인 가구수는 5만 8,618호였다. 이 단체가 조직된 곳은 일본 경찰기관이 배치된 도시 지역이었으며, 입회는 반강제적이었던 듯하다. 각 지역별 민회는 일본 영사관령에 의해 임원으로 회장과 부회장 각 1인, 주사와 서기, 대의원 약간 명을 두었고, 마을마다 회무의 집행과 자문에 응하기 위해 참의원을 배치하였다. 이들 임원은 모두 일본 영사의 인가를 얻어 임면되고 일본 관헌의 감독 밑에서 사무를 집행하였는데, 대부분 부유한 조선인들이 맡았다. 민회장회의(民會長會議)가 있어 각 지역 민회간의 연락을 담당했으며, 1929년 민회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이 단체는 일제의 민족해방운동 탄압을 지원하는 한편, 일본 관서의 명령, 기타 포달(布達)을 조선인에게 전달하고, 조선인들이 제출한 서류를 접수, 이를 해당 관서에 전달하는 등 총독부 행정의 말단기관 역할도 수행하였다. 또 부유한 조선인을 민회에 계속 묶어 두기 위한 방편으로 자체적으로 금융사업을 실시하였다. 이 단체에 대한 간도 조선인의 반응은 냉담했고, 때로는 단체 임원들이 민족해방운동가들의 친일분자 소탕전 때 응징되기도 하였다.

조선인민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