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고려 및 조선시대 나라의 역사기록과 중요한 서적·문서를 보관한 국가의 서적고(書籍庫)를 의미한다. 특히 사고 안에 따로 역대 실록(實錄)을 보관한 곳을 사각(史閣)이라 해서 그 보존에 힘을 썼다. 고려는 개국 초에 사관(史館:春秋館)을 두어 국사의 편찬과 그 보관에 힘썼으나 전란으로 소실되어 <<명종실록>>을 완성하여 해인사에 보관하기도 했다. 조선시대는 처음에 춘추관과 충청도 충주(忠州)에 실록보관소를 두고 실록을 보관하다가, 1439년(세종 21) 경상도 성주(星州)와 전라도 전주(全州)에 사고를 설치, 춘추관 외에 이들 충주·성주·전주의 사고를 3대 사고라 해서 여기에 역대 실록을 분산 보관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1606년(선조 39) 명종까지의 실록이 재인(再印)되자 평북 영변(寧邊)의 묘향산(妙香山)에 사고를 설치하여 전주본을 옮기고, 강릉(江陵)의 오대산(五臺山), 봉화(奉化)의 태백산, 무주(茂朱)의 적상산(赤裳山)에 사고를 마련하여 새로 간행한 실록을 보관하였다. 1628년(인조 6) 강화(江華)의 마리산(摩利山)에 새로 사고를 설치하여 묘향산 사고의 전주본을 옮겼다가, 1660년(현종 1) 강화 남쪽의 정족산(鼎足山)에 사고를 마련하여 마리산 사고의 전주본을 이곳에 비장하였다. 본래 실록 등 귀중한 사서를 중앙에 집중 보관하기보다 지방에 분산하여 그 안전을 꾀하기 위해 지방에 사고를 두었던 것이다.
사고의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