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은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그 중요성이 재인식되어 1659년(효종 10)에 왕이 송시열(宋時烈)에게 명함으로써 산성 수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숙종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축성 계획이 검토되고 1711년 2월에 비로소 축성이 결의되었으며 4월에 축성이 시작되어 9월에 완료되었다.
북한산성 수축
북한산은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그 중요성이 재인식되어 1659년(효종 10)에 왕이 송시열(宋時烈)에게 명함으로써 산성 수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숙종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축성 계획이 검토되고 1711년 2월에 비로소 축성이 결의되었으며 4월에 축성이 시작되어 9월에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