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0년 6월 삼별초 해산령에 불만을 가진 삼별초 장병들이 개경 환도(開京還都)를 거부하고 여원연합군(麗元聯合軍)에 대해 펼쳤던 3년간의 항쟁.
고려를 예속화하려던 몽고의 정책과, 조국의 예속화와 종속적 위치를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보호하려던 국왕 및 그 일파의 행동에 항거한 병사들의 항쟁이었다.
삼별초가 고려·몽고 연합군의 우세한 병력의 공격에도 3년간이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첫째, 삼별초가 매우 우수한 정예 전투병력이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배후에 남부 지역 각처의 농민들이 삼별초의 항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정부와 몽고군에 대해 투쟁하려는 굳은 결의가 민중 사회의 내부에 고양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삼별초의 대몽항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