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5월 22일 고종의 계비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에 의해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로 개교하였다. 순헝황귀비는 여성의 신교육을 목표로 한성 박동(지금의 서울 종로구 수수동)에 위치한 용동궁(龍洞宮)을 내려 교사를 짓게 하고 경비를 지원해 명신여학교를 설립하였다. 초대 교장에 이정숙(李貞淑)이 취임하였으며, 귀족 양가의 여성 5명이 입학하였다. 「고등여학교령」에 의거해 1909년 5월숙명고등여학교로 개편하였고, 1910년에 제1회 졸업생 4명을 배출하였다. 순헌황귀비는 개교 후에도 학교의 운영자금을 지원하였고, 1911년 황실로부터 하사받은 재령군을 비롯한 황해도 일대와 전라남도 완도군의 농지를 기금으로 숙명재단을 설립하였다. 1911년 「조선교육령」에 의거해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로 개칭한 데 이어 1936년에는 제3차 「조선교육령」에 의거 다시 숙명고등여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으며, 광복 후 1946년 수업연한 6년의 숙명여자중학교로 개편되었다. 한편, 일제강점기였던 1911년 일본 천황의 생일축과(生日祝果) 거부로 3학년생 전원과 2학년생 14명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또한 3·1운동 때에는 전교생 2,000여 명이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이은혜와 조경민이 구속되고 나머지 학생들은 정학 처분을 받았다. 1934년에는 민족주의사상 고취를 위한 독서클럽 활동으로 3명이 퇴학당하고 1명이 정학을 당하기도 하였다. 1951년 8월 「교육법」 개정에 따라 숙명여자중학교와 분리되어 숙명여자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1971년에 각 학년 12학급씩 36학급으로 편성하였으며, 1980년 3월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현재의 위치로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2002년 9월 교육정보관을 개관하였다.

숙명여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