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4대 사화(士禍) 중 하나로 1545년(명종 즉위년) 명종(明宗, 재위 1545~1567)이 즉위하면서 모후인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와 외척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

중종(中宗, 재위 1506~1544)이 죽은 뒤 즉위한 인종(仁宗, 재위 1544~1545)이 병 때문에 1년도 안되어 죽고, 다시 명종이 즉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종과 명종을 중심으로 한 외척들 사이에 정치적 갈등이 발생하였다.

중종의 첫 번째 계비(繼妃)였던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는 인종을 낳았고, 두 번째 계비였던 문정왕후 윤씨는 명종을 낳았다. 세자 책봉 문제 등을 둘러싸고 장경왕후의 아우였던 윤임(尹任) 세력과 문정왕후의 형제였던 윤원형(尹元衡, ?~1565) 세력이 대립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윤임 세력을 대윤(大尹), 윤원형 세력을 소윤(小尹)이라 불렀다.

을사사화는 윤원형 세력(소윤)이 명종의 즉위와 함께 문정왕후의 밀지(密旨)를 받아 일으켰던 사건이었다. 당시 윤원형은 자신의 첩이었던 난정(蘭貞)에게 문정왕후에 대한 역모를 고발하도록 시켰다. 이 고발로 인해 대윤 일파에 속했던 주요 인물 대부분이 처형되거나 유배되어 몰락하였다. 을사사화를 계기로 문정왕후와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 세력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지만, 파행적인 국정이 거듭되는 가운데, 결국 척신 정권이 붕괴되고 붕당 정치가 시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을사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