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에 조직된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의 추진 기관. [설명] 1922년 2월의 조선교육령 개정으로 조선에도 대학을 설치할 수 있게 되자, 조선인의 민립대학을 세우자는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1922년 11월, 민립대학 설립을 위해 이상재(李商在) 등이 남대문통 식도원(食道園)에 모여 조선민립대학기성준비회를 정식으로 결성하였다. 이어 1923년 3월 29일 발기인 1,170명 중 462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3일간에 걸친 총회를 개최하였다. 민립대학 설립운동은 1차로 법과·문과·경제과·이과 등 4개 과, 2차로 공과, 3차로 의과·농과를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조선민립대학기성회를 중심으로 1천만원 모금운동을 추진했으나, 일제의 방해와 홍수·가뭄 등으로 모금에 실패했다. 그 후 오산학교(五山學校)·연희전문·보성전문 등을 대학으로 승격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일제의 저지로 끝내 하나도 실현되지 못했다. 일제는 관립대학인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을 설치했다.

조선민립대학기성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