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3월 경성고등교원양성소(京城高等敎員養成所) 재학생이던 이우용(李雨用)이 주동이 되어 민족경제자립을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비밀결사조직체이다. 1914년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양성소 학생들은, 일본의 현대적 문물제도의 발달을 살펴본 뒤 지금 상당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영구히 일본의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임을 피부로 느꼈다. 1915년 1월 이들은 성경연구회(聖經硏究會)에서 비밀집회를 가지고, 양성소를 수료한 뒤 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게 되면 학생들에게 민족혼을 고취하여 정신적인 단결을 꾀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일본에 탈취당한 경제권을 다시 탈환하기 위해서는 각종 사업을 전개하여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여야 한다고 결심하고, 남형우(南亨祐)·최남선(崔南善) 등과 협의한 뒤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를 조직하였다. 계장에 중앙학교 교사인 최규익(崔奎翼), 총무에 윤창식(尹昶植), 회계에 최남선·민용호(閔容鎬), 서기에 이진석(李鎭石)·엄주동(嚴柱東), 협의원(協議員)에 유근(柳瑾)·남형우·김창덕(金昌德)·오상현(吳相鉉)·김두봉(金枓奉)·백남운(白南雲)·안종건(安鍾建)·이강현(李康賢)·김일(金馹)·박중화(朴重華) 등이 선임되었다. 각지에서 학생과 교사를 포섭하여 회원이 130여 명에 이르렀다. 계의 운영은 주식제도를 채택하여 1주에 20원으로 하였으며, 계원 한 사람이 10명의 주주를 모집하기로 하였다. 해외에서 간행되는 독립운동신문 『국민보(國民報)』를 비밀리에 반입, 구독하였으며, 일본에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동유지(東遊誌)』를 간행, 배포하였다. 그러나 계의 활동이 본격화되려는 1917년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해체되고 말았다.

조선산직장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