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중·후반 민족운동 전선에서 민족협동전선론이 대두되어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의 협동전선으로 신간회가 창립되었다. 칠곡에서도 왜관청년회와 약목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이미 칠곡청년연맹을 결성하여, 면 단위에서 군 단위 차원으로 운동의 영역이 확대되어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1927년 7월 22일에 청년운동 주도층과 지역의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신간회 칠곡지회를 설립하였고, 지회는 칠곡군 사회운동의 중심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설립 당시의 조직은 지회장, 부지회장, 서무부, 재정부, 정치문화부, 조사연구부, 선전부 등으로 구성되었다. 신간회 칠곡지회는 1929년 5월에 신간회 대표원을 선거하였고, 지회의 조직을 집행위원회 형태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신간회 칠곡지회는 오랫동안 일제(日帝) 경찰 당국의 집회 금지라는 탄압으로 인해 사실상 공식적인 활동을 벌이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1931년 전국적으로 신간회 해소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때, 신간회 칠곡지회 역시 향후 방향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으나 해소론에 대한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칠곡청년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