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虹口公園)에서 일본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일왕의 생일축하와 상하이 사변 전승기녕 행사장에 윤봉길이 폭탄을 던진 사건.
거사 직후 윤봉길은 체포되어 오사카 육군위수형무소(衛戍刑務所. 현 오사카성 호코쿠 신사 위치)로 이송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그해 12월 순국하였다. 임시 정부도 상하이를 떠나게 되었으며, 1940년 충칭(重慶)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여러 곳을 옮겨 다녀야 했다.
한편, 윤봉길의 의거에 대해 중국의 지도자 장제스는 “중국 1억 인구가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찬사를 보내며, 이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도 하였다.
▶ 사망자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상하이 일본 거류민 단장, 가와바타 사다지(河端貞次)
▶ 중상자
해군 중장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野村吉三郎)
육군 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 켄키치(植田謙吉)
주중공사,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 훗날 외무장관이 되어 1945년 항복 문서에 서명함
홍커우 공원 의거